- 포도는 손으로 수확해서, 수작업 리들링을 포함한 전통방식에 의해 양조됩니다. 조셉 페리에 셀러는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길이는 3km에 달하며, 하우스가 설립된 이후 자연 - 빛을 반사하는 섹션이 특징적이다.
- 최소 4년 이상 효모와 함께 셀러에서 숙성된다.
조셉 페리에 (Joseph Perrier)는 1825년 Chalons-Sur-Marne(오늘 날의 Chalons-en-Champagne)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했다. 이후 이 도시의 시장이 되었다. Chalons-en-Champagne의 유일한 샴페인 하우스인 조셉 페리에는 샹파뉴 지방 심장부에 빈야드를 소유하고 있다. 설립 이후 5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이 샴페인 하우스는 1888년 8월 2일 조셉 페리에의 지인인 폴 피토이스(Paul Pithois)가 상속인 없던 가브리엘 페리에를 대신해 와이너리를 인수했다. 폴의 아들인 폴과 로저가 이 샴페인 하우스를 유명한 샴페인 브랜드로 키워나갔다. 피토이스 가(家)는 이미 샴페인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실력자였기 때문에 조셉 페리에를 최고의 샴페인으로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50년에는 로저의 아들 조르쥬가 이 샴페인 하우스를 물려받았고, 1980년에는 로저의 외손자이자 현재 오너인 장 끌로드 포몽(Jean-Claude-Fourmon)이 주인이 되어 조셉 페리에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장 끌로드 포몽의 아버지는 Epernay의 “Moet et Chandon”의 책임자였고, 그로 인해 포몽은 어린 시절을 샴페인의 고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후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남아메리카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와인과 포도에 대해 공부하게된다. 이후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조르쥬 피토이스를 도와 조셉 페리에의 수출 담당자로 근무하게 되고, 이어서 조셉 페리에를 경영하게 되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지난 30년 간 조셉 페리에를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만든 장본인이자 상징이다.
조셉 페리에 샴페인은 세계의 권력자나 명사들로부터 항상 최고의 찬사를 받았는데, 특히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그의 장남인 에드워드 7세 시절까지 영국 왕실의 공식 샴페인으로 인정되어 왕실에 샴페인을 공급했다. 그리하여 조셉 페리에의 모든 샴페인에는 “Cuvee Royal”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기의 결혼식이었던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과 에드워드 왕자의 결혼식의 공식 샴페인으로 사용되었다. 샴페인의 나라인 영국의 왕실에서 가장 사랑 받았던 조셉 페리에는 이제 전 세계의 샴페인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최고급 샴페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조셉 페리에의 빈야드는 샴페인 지방의 최고 산지인 Cumieres, Damery, Hautvillers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들은 셀러가 있는 Chalon-de-Champagne와 함께 샴페인 지방의 심장부이다. Cumieres에서는 최상급의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생산하는데 이는 조셉 페리에 샴페인을 만드는 근간이 된다. Verneuil에서는 역시 최상급의 피노 뮈니에를 생산한다.
고대 골족과 로마인들에 의해 조성된 조셉 페리에의 지하 셀러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본래 석회암 채석장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전체 길이가 2마일이 넘는다. 이러한 수평 갱도는 샴페인을 보관하기에 최고의 장소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최상급 샴페인을 만들 수 있는 일정한 온도 및 습도를 제공한다. 이처럼 샴페인을 위해 신의 축복받은 셀러에서 수백만 병의 샴페인이 자연의 신비 아래 최상의 숙성과정을 거치고 있다.